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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741

 
 
 
 
 
근무중 잠시 일이 있어 외출한 나는
내리막으로 된 꽤 넓은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로의 끝은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마치 부산 청사포 내려가는 길과 많이 닮았다.


바다에 도착해서 다음에 카메라 들고 여길 오면 
어디서 찍음 좋을까를 잠시 살폈다.
암초 가득한 해변, 
발 젖는 걸 개의치 않고 좀 더 걸으면 숨겨진 비경이 있을듯 하다.
 

그렇게 큰 바위 돌아서 가려졌던 곳으로 들어서니 
암초 가득 둘러 쌓여 마치 바다가 호수가 된듯한 풍경이 나온다.
탄성을 내며 그래 이거지~
하며 조금 더 자세히 보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물가에 하얀 2층 주택 몇 채, 하지만 인적은 느껴지지 않고 적막하기 그지없다.
느낌이 기묘하다. 갑자기 화면에 노이즈가 생기듯 내 시야가 흐려지고 
안개가 빠르게 들어차며 사방이 어두워진다.
기분 나쁜 분위기에 뒷걸음질을 잠시 치고선
빠르게 몸을 돌려 왔던 길을 향해 뛰었다.
등뒤에서 느껴지는 섬찟한 기운.

 
나는 원래의 길에 진입했고
외출이 너무 길었단 생각에  회사로 걷기 시작했다.
내려왔던 오르막 길을 오른다.
분명 직진만 해서 내려왔는데 중간에 헷갈린 나는 
갈림길에서 11시 방향으로 난 왼쪽길을 택했다.
들어설 땐 꽤 넓은 도로였는데 점점 좁아지더니
이윽고 사람 둘 간신히 지날만한 좁은 골목이 되어 버렸다.
 

아 이거 낭패다. 외출도 너무 오래 하고 있고 
돌아갈 길도 잃어 버렸고...망했네 이거.
무거운 맘으로 열심히 걸었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커플, 뭔가 얘기중이다.
부모님 만나러 가는 자리를 앞두고 뭔가 상의하는듯한 대화.
여자가 나를 힐끔보며 못마땅한듯한 눈길을 주고선 길을 비켜 준다.
이윽고 다다른 골목의 끝에 마을 버스가 보인다.

 
나도 그 커플도 그 버스를 탔다. 버스엔 이미 기존 승객 대여섯.
차가 출발하고 얼마 안 지나 내가 걸어 내려왔던 길을  이제 버스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안도가 된 것도 잠시, 
내 기억에 이제 좌회전해야 할 시점인데 
버스가 직진을 해버린다.
어쩐지 다시 마을로 들어가는듯한 느낌?
 

아니 여기 길이 아닌데?
왜 이리 가냐고 기사에게 물으니
이 지역이 볼거리가 많으니 관광차 한 바퀴 돌며 구경을 시켜주겠다 한다.
 
뭐라고요?
아니 필요없다고요, 여기 모두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냥 원래 길로 돌아가자구요.
 
기사는 무시하고 계속 동네 깊이 들어간다.
내가 두번 째 돌아가자 했고 버스기사의 무시가 이어졌고
세번 째 돌아가잔 말을 했다.
 
 
그새 마을 너무 깊이 들어왔고 시간 지체도 너무 되었다.
버스 기사는 뭐에 홀린듯 말도 없이 계속 깊이 들어가려고만 한다.
결국 승객들이 나서서 완력으로 버스기사를 끌어내렸고 차를 세웠다.
길을 모르는 나와 승객들은 모두 차에서 잠시 내려
방향에 대해 상의하는 중에 버스 기사는 사라졌다.
 
 
조용한 골목 풍경, 
여긴 대체 또 어딘가?
한쪽으론 바다와 어선이 보이는 어촌 마을 풍경,
하지만 사람은 우리외에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맘이 급했고 돌아가야할 길에 대해 논의했고
방향을 정하고 행동을 같이 해 걸으려는데
뭔가 바다쪽 수면에서 움직임이 있다.
 
 
큰 조개만한 크기의 형체를 가진 것이  넘실넘실 파도를 타더니
마치 발사되듯 우릴 향해 날아온다.
정체를 알 순 없지만  분명 맞으면 큰 일 날거란 직감에
우리들은 다급하게 골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기억이 났다. 이 골목을 와봤던 기억.
처음 온 동네라 생각했던 그 곳에 대한 기억이 번쩍 하며 떠올랐다.
내가 분명 온 적이 있었다 과거에!
 
 
대략의 지리에 대한 기억이 났기에 내가 앞장서 일행을 이끌며 달렸다.
초조한 맘으로 말없이 골목을 달렸고 갑자기 좁아진 골목길 저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막아선 게 보였다.
모두들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고 크게 대수롭잖게 여기는듯 했는데
그 순간 나는 봤다.
너무 미세한 움직임이라 나만 본듯 하다.
고양이의 형체가 흐려지며 순간이동하는듯한 기이한 움직임,


저건 고양이가 아니다! 모두 조심해!
라고 내가 외쳤고 모두들 의아한 표정.
나는 길에 떨어진 막대기 같은 걸 주워
기습적으로 고양이를 쳐서 아랫길로 떨어뜨렸다.
아랫길, 
그 골목은 부산 감천 마을처럼
비탈길에 여러 층으로 형성된 골목길 형태라
한 층 아래의 골목으로 떨어진 것이다.
내가 고양이를 가리키며
저 움직임을 이제 보라구! 라고 외쳤고,
과연 그 고양이는 분신술 쓰듯 형상의 흔적을 남기며 자세를 바로 잡더니
우릴 빤히  올려 보고선  소릴  쾡~ 내더니 길을 올라 우릴 향해 뛰기 시작한다.
 

모두 기겁을 했다.
뛰었다.
파쿠르하듯 담을 넘고 지붕을 타기도 하며 우린 도망을 쳤다.
모두가 초인같았다.
이제 동네의 끝이 보이는듯 하다.
모두 힘내! 이제 곧 골목 끝이야 를 외치며 달렸고
더이상 고양인 보이지 않았고 우린 불길한 기운 가득했던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경사가 진 넓은 광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또 한 번 경악.
바닥에 잔뜩 쓰러진 시체들,
시체인데 몸의 형체는 사라지고 검은 연기로  윤곽을 유지하고 있는 시체들.
모두 기겁하며 말을 잃은 가운데
나는 봤다.

 
구석에 시체 하나,
남아있던 육신이 검은 연기로 천천히 변해가는 과정을.
마지막 얼굴만 남은 시점에서 내가 달려가 
손으로 그 연기들을 흩날려 버렸다.
그러자
몸을 감싸있던  연기가 모두 사라지며 그 사람이 몸을 갖추며 깨어났고
그걸 본 사람들이 주위의 시체들에게도 다가가 연기를 날려주니
마법처럼  모두가 육신을 갖추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깨어났다.
 
 
그렇게 깨어난 사람들은 다행히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고
이 악령이 씌인듯한 마을에서 함께 벗어나기로 뜻을 같이 했다.
우린 이제 제법 많은 일행이 되었고
미지의 존재가 습격해 올 경우에 대비한 무기도 
급한대로 보이는대로 주워 들고
출구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이동을 시작하려는 찰나,


갑자기 들이닥친 군용 트럭과 군인들,
예고도 뭐도 없이 우리를 향한  무차별 난사.
영문도 모르는 공격에 무방비의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고.
우린 울부짖었다. 우린 괴물이 아니라고! 멀쩡한 사람들이라고!
이윽고 공격이 멎었고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혼이 나간듯했고
더러는 울고 있었다.
 
 
멍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섰던 나는  그 골목길 커플중의 남자를 발견했다.
아~ 무사했군요? 여친분은 어딨어요?  했더니
내 품에 안겨 운다.
나도 같이 울먹거리고.
우린 함께 군인들에게 끌려가 작은 도서관에 갇혔다.
책임자급으로 보이는 이의 뭔 내용인지도 모를
이상한 안내와 지시를 한참 들어야 했다
분명 한국어인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 시선이 옆 책장의 책 제목을 훑는다.
헤어진 이별 어쩌고 하는 제목의 책을 무심결에 내가 뽑아 드는데
버스 승객중 하나로 이미 안면이 익었던,  나보다 형으로 보이는 분이  
책을 손에서 뺏으며 말한다.
이미 떠난 사람 연연하지마시오, 잊으라고.
그 말에 내가 말을 잊고 고개만 끄덕.
그가 내 손을 꼭 쥐어준다.
.
.
.
.
.
이상 얼마전 꿈 내용.
깨고 나서 한동안 여운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 지나면 빠르게 잊혀지는 게 꿈인데
유독 며칠간 계속 기억이 선명해서
기록삼아 여기에 한 번 적어 본다.